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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 지식인의 계급투쟁: 계급 없는 계급정치, 민중을 위한 대리정치, 민주주의 표상의 독점 2/3(중민이 된 86세대 지식인)Articles (draft version) 2022. 3. 16. 21:11
* 논문이나 기고문을 쓰다보면 애초의 아이디어가 조금 달라지거나 분량을 초과해 최종본에는 삭제판이 실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애초의 작업본이 아쉬우면서도 아까워 버리지 못한다. 사유의 잔여물, 잉여, 쓰레기일 수도 있지만, '날것' 그대로의 사유실험의 궤적을 그대로 실어볼까 한다. 언제가 내 작업을 스스로 돌아보는 성찰적 계보학을 위한 기록으로 남긴다.
** 출간본: 2020. 86세대 지식인의 계급투쟁: 대리 정치와 표상의 독점. <문화/과학>, 102, 50-77.
한상진이 주목한 것은 사회적 행위주체의 ‘도덕적 자원’ 또는 ‘도덕적 잠재력’이었다. 한상진은 86세대의 민중지향적 가치와 탈인습적 가치인 도덕적 자원이 (최초 가설을 제기한 1994년부터21 재주장한 2015년까지도) “아직 살아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이 도덕성은 김홍중이 말한 ‘진정성’에 다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진정성의 에토스는 80년대 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되어 소위 386세대의 세대의식의 핵심을 구성”했다.22 한상진에 따르면,
중민 이론의 또 다른 시사점은 80년대 중민의 경험에 각인된 도덕적 자원에서 나온다. 사회로 진입한 중민이 사회 공존을 위해 “노블레스 오불리주”를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는가의 질문이 제기된다 … ‘높은’ 신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 노블레스의 ‘고유속성’으로서 ‘사회에 대한 기여와 봉사’가 입증되어야 한다 … 중민은 ‘민중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젊었을 때 노동 현장 참여, 도시 빈촌의 야학 활동, 의료 봉사, 농촌 봉사 등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성공이 사회제도의 혜택 덕분이며 경쟁에서 낙오한 하류 계층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는 인식을 내면화시켰다. 이렇게 볼 때, 80년대의 도덕적 잠재력은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23
한상진은 ‘노블레스 오불리주’를 사회적 정당성을 가지는 중민의 실천적 전제로 상정했다. 즉 사회적 지위의 정당성은 ‘하방’ 지향적 실천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86세대의 도덕적 책무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헌신 - ‘무사무욕’ - 의 서사는 대리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덕적 자원’이 된다. 부르디외는 ‘노블레스 오불리주’를 지배층의 ‘상징적 지배’의 재생산 논리로 보고, 이를 ‘상징적 교환 경제’를 통한 “지배 및 착취관계의 미화”로 설명한 바 있다.24 피지배자는 지배자의 ‘사심없는’ ‘기여와 봉사’를 지배자의 본성적 능력으로 인정(오인)함으로써 지배자에게 ‘상징적 권위(상징자본)’를 부여하는데 이것이 불평등의 질서를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나 정치지형이 여전히 민주정치 프레임 결정에 대한 86세대 엘리트들의 독과점 또는 ‘권력연합’을 정당화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86세대의 ‘도덕적 잠재력’이 “아직 소진되지 않았다”는 판단은 유효한 것인지 모른다.25 중민 이론은 그것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지는 모르나, 민주정체를 (계급의 안정적 재생산 기제인) 신분적 질서로 ‘정상화’하고 이 민주정체의 핵심에 86세대 엘리트 정치세력의 집권의 정당성을 예고한 것이다. 부르디외가 보여주었다시피, 교육제도는 이러한 불평등한 ‘귀속 지위’를 ‘성취 능력’으로 자연화하는 최고의 장치이다. 한상진은 이러한 당대 중민, 사실상 86세대의 성격을 비교적 낙관했다.26 중민의 태동은 “고등교육에 대한 높은 사회적 투자와 지식 계층에 강한 민본적 가치 지향이 결합해낸 독특하고 역동적인 시너지 효과”하는 것이다.27 28
이렇게 한상진의 이러한 해석은 86세대와 (그들이 재현한 그들의) 계급(론)의 관계의 문제를 보여준 통찰이긴 하지만, 또한 86세대에 대한 전도된 계급론으로서 비판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조국 자녀의 연구부정과 입시부정, 또 그로인한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어떤 86세대 지식인들의 주장은 민주주의 체제가 단지 합법적 정당성 제도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불평등과 계급재생산조차도 현체제 내에서만 해소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87년 민주정체의 정당성을 넘어서서 제기되는 또다른 정당성인 공정과 평등은 사실상 무시된다. 게다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을 ‘반민주’, 심지어 ‘적폐’ 범주에 넣어버렸다. 계급재생산의 기제로서 교육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부차모순’ 정도로 취급함으로써 재갈을 물리는 이들의 정치언어는 민주당 정권의 ‘나중에’ 수사와 너무나도 동형적이다. 이러한 동형성의 정치적 효과는 다양한 사회적 영역들을 무차별적으로 관통하면서 현재 제기되는 평등(공정)/불평등의 전선을 교란시키고 무마시키는 민주/반민주 표상의 구조적 폭력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29
그렇다면 민주/반민주 표상은 왜 그토록 강고한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정치적 표상의 폭력적 재생산은 특정한 정치적 행위자(86세대)가 다른 정치적 행위자(민중)들의 정치적 실천들에 대해 ‘합법’적으로 해석하고 규정지을 권한을 독점해 온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 합법적 권한이란 민주화운동에 대한 헌신과 자신들 스스로에게 ‘진정성(authentivity)’을 부여함으로써 자신들이 구축했다고 자부하는 정권체제(87년체제)의 제도적 기반에서 오는 것이다. 그 결과, 86세대는 그들 스스로 오류에 빠질 수 없는 정치적 주체라는 자기확신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러한 자기기만의 정치적 표상을 재생산하는 86세대의 계급 하비투스는 한상진의 ‘중민 이론’에서 읽어낼 수 있다.
‘중민(中民, middling grassroots)’의 탄생: 부정된 이해관계와 계층상승 욕망의 모순적 종합(하비투스)
86세대의 정치적 또는 계급적 특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하에서는 당시 사실상 86세대를 사회변동과 민주화, 근대화의 관점에서 이론화한 ‘중민 이론’을 통해 86세대의 계급적 에토스와 계급정치학을 읽어내고자 한다.30 김홍중은 중민 이론이 “중민이 어떤 종류의 ‘민’인지를 명료하게 밝히는 개념화 작업을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밝히면서, 이제는 중민을 “역사적 대상으로 파악”해야하며, “‘중민’의 분화를 탐구해야”한다고 주장한다.31 이 글은 중민의 분파로서 86세대 엘리트 지식인에 초점을 둔다.
중민 이론은 사회학자 한상진이 1980년대와 그 이후 한국사회의 행위주체를 기술하는 사회변동론이자 그 변혁주체를 동원하고 개입하기 위한 비판이론이다.32 중민이란 한 마디로 스스로 민중이고자 하는 ‘민중 지향적 중산층’이다. 중산층이지만 ‘권력 연합’에 참여한 ‘주류 중산층’이 아니라 스스로 기층 민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민중 연합’에 참여하는 변혁지향적 인구집단이라는 것이다.33
한상진이 인정했다시피, 86세대는 중민의 “핵심”34이자 “표상”35이며 “중민이론의 꽃”36이다. 사회변혁의 핵심에 86세대 중민이 있다는 것이다. 한상진은 “민중의 ‘합리적 핵심’”37에 86세대의 민주화운동을 위치시켰다.38 그리고 민중의 핵심에 중민이, 중민의 핵심에 86세대의 민주화 헤게모니를 규정한 것이다.
나는 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가는 원동력은 착취와 박탈로 퇴적하는 무산층이나 주변 집단이 아니라 반대로 중심으로 진입한 근대적 성격의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실패로 인해 체제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함으로써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세력들을 대거 양산했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중민 이론을 주창하게 되었는데, 이 테마가 오늘의 386세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중민이란 문자 그대로 중심으로 진입한 민중이요 사회의 중간층이면서 민중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집단을 가리킨다. 중민은 민중의 대립 개념이 아니라 민중의 합리적 중심을 포착한 개념으로 제시되었다. 당시 나는 중민을 구성하는 세 집단에 주목했는데, 하나는 전문직 같은 신 중간층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화된 노동자 집단이며 마지막은 대학생들이었다. 그 가운데서 나는 특히 대학생들의 사회 진입에 따른 세대 효과를 주시하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80년대 중반이 되면서 사회에 진출한 이들 젊은 집단들이 중산 층과 노동계에 미친 영향이 막강했다. 나는 이들이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대학에서 얻은 정체성과 가치관의 뼈대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후에 여러 조사를 통하여 그렇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은 지난 20여 년의 경험과 행동을 통하여 386세대가 중민의 핵심 집단으로 성장했음을 뜻한다. 중민은 자신의 이해관계만 집착하지 않고 헐벗은 민중을 품에 안으려는 포용적 가치관을 지난 중간층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80년대의 민중 문화를 통하여 386세대가 이런 가치관을 획득했고 실천했으며 사회에 확산시킨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때문에 나는 386세대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고 그 가치지향을 수호하는 입장에서 말하고 싶다. 386세대의 진정한 의미는 직접 권력 으로 진입하는 단순 회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우회하는 보다 풍부한 상징과 문화, 인간 주체의 형성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현금의 상황은 386세대에게 기회이면서 위험을 뜻한다.39
“중도 변혁 모델”40, ‘신중간층 또는 중간계급의 점진적 개혁노선’을 표방한 ‘중민 이론’은 사회발전과 변동, 그리고 변혁의 역사적 주체를 설명하고자 했고, 그 중심에서 386세대의 사회・정치・경제적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41 중민 이론을 제출한 한상진에 따르면 “중민은 원래 근대적 성격을 획득한 민중의 핵심으로서 신중산층, 숙련 기술 노동자, 대학생 청년 세대를 가리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지막 범주, 즉 80년대 세대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언론과 대중매체를 통해서 ‘386’이라는 조어가 부상했고 “이로써 중민의 핵심은 80년대 대학 세대이자 이른바 386 정치인인 것처럼 간주하는 경향도 생겼다.”42 한상진은 “중민적인 성격은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층에서 보다 분명해지고 있”기에 “중민의 가능성과 잠재력이 커가고 있다”고 보았다.43 44
1980년대 이래 강력한 민중적 정체성을 획득한 젊은 세대, 특히 대학생이 매년 사회에 대거 진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밑으로부터의 변화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중민은 이미 완성되었다기보다는 21세기를 향한 변혁의 주체로서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45
중민 개념은 그것의 특정한 인구집단(386세대)을 넘어서 한국사회변동의 정치적 주체, ‘정치세대’로 호명되었다. 정철희에 따르면, 신중간계급이 민주화를 공고히 하는 세력인지의 여부는 유보하지만, 중민 이론은 신중간계급과 “유사한 사회세력의 역사적 형성에 대한 탐색”이며, 이 계급범주의 “한국적 수용”으로 본다. 중민으로서 86세대 지식인은 사실상 인문학적 지식을 갖춘 지식인과 기술적 지식을 갖춘 인텔리겐챠를 포함하는 분석마르크스주의나 굴드너의 ‘신중간계급’과 유사하다.46
한상진은 ‘386세대의 헤게모니’47를 설명하는 동시에 예측하고자 했다. 중민의 정의가 “중심으로 진입한 민중” 또는 “사회의 중심에 위치한 민중”이자 “진보적”이고 “변혁적인”48 “자신을 민주의 일부로 여기는 중산층”49이라는 점에서, 한상진이 기술하고 기대한 중민은 오늘날 86세대 엘리트가 성취했다. 계층 또는 계급상승을 이루면서 “민중이려는 자”50이자 “자기 이익을 넘어서 공적 가치를 위해 책무를 다하는 시민”51으로서 중민은 86세대 운동권 지식인의 도덕규범적 지향을 잘 드러낸 정의일 것이다.
절대적 빈곤으로 정체되거나 하강・퇴적하는 집단은 객관적으로 중민이 되기 힘들다. 반대로 중민은 근대화 과정에서 중간층으로 진입했거나 상승 이동하고 있는 집단을 가리킨다. 동시에 기존 체제에 편입되어 안주하기보다는 그 병폐를 깨닫고 변화를 요구하는 집단이 중민이다.52
여기에서 우리는 86세대 엘리트의 (모순된) 이념적 지향 내지 계급성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 계층 상승에 대한 기대(중간계급의 상승지향 하비투스)에 스스로 저항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학이라는 학력자본을 획득함으로써 지속적인 계층상승의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는 - 하지만 또한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불안을 극복하고 ‘교육성공신화’53를 재생산함으로써 지위를 유지하려는 - 86세대 정치성향을 설명하는 초기 조건(하비투스)이다. 박치현에 따르면 “민중은 피지배자로서 억압받았지만, 다른 한편 계층 상승의 가능성과 미래의 생활 향상에 대한 기대로 동시에 존재”했으며, “이 지점에서 민중 담론과 병행했던 중산층 담론 등장의 조건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54 즉 한상진은 86세대의 계층 상승 욕망을 예언적으로 읽어낸 셈이다.55 김홍중이 말한 ‘진정성’ 역시 86세대의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 계급적 위치와 민중적 자아 또는 계층상승의 욕망과 ‘하방’의 욕망이라는 두 욕망 사이의 충돌에서 나오는 실존적 갈등을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56
진보적 중산층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중민’ 이론은 사실상 사회적, 물질적 발전 조건과 (그것에 기반하면서도 동시에 극복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민주적・진보적・도덕적 가치이념의 접합의 산물로서 86세대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물질적 가치로서의 발전주의와 정치적 가치로서의 진보주의의 타협 내지 절충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물질적 이해관계(계급재생산)와 정치적 욕망(이념적 가치)이라는 모순을 모순없이(또는 그 모순을 외면한 채) 접합하려고 노력하는 86세대(특히 엘리트)의 발생조건이 설명될 수 있다.57
중민이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중산층과 민중이라는 “두 정체성을 하나로 용해시킨 역동적인 행위 주체”이다.58 정태석에 따르면 중민은 “공적, 시민적 가치를 확산시켜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주체, 사회정의와 공공선을 실현을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주체”이다.59 60 한상진이 ‘중민’을 주장한 초창기 “당사자인 ‘중민-대학생들’로부터 거의 외면”61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민을 ‘호명’한 까닭은 “중산층의 중요한 분파가 군사독재에 반대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정경유착의 재벌 경제에 반대하여 사회적 공평성과 공정성을 주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62 한상진은 중민 개념의 사용이 1980년대 당시 한국 중산층을 보수적 집단으로 규정한 것을 비판하며 “급격히 성장하고 있던 한국 중산에 현저한 체제 불만과 저항의 잠재력이 있”음을 알게된 시점이라고 밝히고 있다.63 한상진은 학계와 대중매체를 통해서 당시 사회적 담론장에서는 경제성장의 수혜층인 중산층과 정치적・경제적 배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민중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이 대립되는 것처럼 얘기되었다고 회고한다.64 한상진은 2015년 한국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중민 이론을 회고하는 논문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1980년대의 체험으로 성장한 중심은 어디에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서초동’과 총선결과에 있는 것은 아닐까.
중민이 되어 중민 노선을 따르는 86세대 지식인?
중민 이론은 ‘민중민주주의’, ‘계급혁명론’, ‘민족해방론’, ‘주사파’ 등이 “동기와 의도가 어떻든 간에 실제로는 변혁을 가로막는 장애 요소에 불과하다”65고 비판하면서 중도 변혁, 소위 ‘중민 노선’을 명시적으로 표방했다. 어떤 집단도 변혁주체로서 특권적 지위를 선험적으로 부여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기층민중이나 노동자 계급만의 변혁가능성을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운동권 및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중민이론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한상진 교수가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을 무렵, 조국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 적이 있다. “안철수의 멘토 한상진 교수는 1980년대 당시 민주화 운동권을 비판하면서 역사발전의 주체는 ‘민중’이 아니라 ‘중민’이라는 ‘중민이론’을 주장했다. 당시 운동권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이후 한 교수는 ‘중민’의 대표격으로 안철수를 ‘발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우리 역사 발전에 ‘중민’이 기여했다고 생각하지만, 원동력은 ‘민중’이라고 생각한다. 새정치연합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자처하는 바, ‘민중’과 ‘중민’을 포괄적으로 대변하고자 한다.”66
하지만 조국과 조국 수호자들은 지금 어떤 운동론을 제시하고 있는가. 앞서 조국 수호 지식인들이 조국 수호를 민주화 과정에서 선차적 과제로 간주했음을 보았다. 흥미롭게도 “재야의 한 분파가 국가권력의 핵심을 장악”하는 “중심화 전략”을 강조하며 한국 민주화의 “연속 이행 모델의 탁월한 보기”가 문민정부의 등장이라고 말한 사람은 한상진이었다.67 중민 이론을 거부한 조국과 그의 수호자들은 이러한 ‘중민 노선’의 ’민주화 연속 이행 모델’을 받아들이는 것일까?
일부 86세대 지식인들은 민주당 이데올로그가 되었다. 변혁적 민중론을 과학적으로 정립하고자 노력했던 사회구성체론의 주요 논자 중 한 명이었던 이진경이 중민, 즉 ’중산층적 민중’의 중심이 된 조국 수호에 나선 것은 역사의 어떤 아이러니일까. 도식적으로 말해, 변혁적 민중론자들이 중산층적 민중론자들이 된 것일까?68 중민 이론과 전혀 다른 결을 가졌던 일부 변혁론자들은 그들 자신이 중민이 됨으로써 결국 이 역사적 논쟁의 종지부를 실천적으로 찍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한상진 역시 민주당 계열의 정치적 참여69를 해옴으로써 (86세대는 아님에도 그들의 스승 격으로서 이론적 지지자이면서도 때론 비판자였던) 한상진 그 자신을 포함해 86세대 민주당 수호자들은 중민 이론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증명하고 복권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한상진과 86세대는 중민의 이론가이자 중민의 실천가였던 셈이다.
중민 이론은 맑스주의 계급론을 상대화시키고 변혁적 중산층의 가능성을 제출한 것이었지만, 필자는 오히려 오늘날 86세대를 통해서 중민의 계급(모순)적 함의가 더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즉 86세대 엘리트 지식인은 지배계급 내 피지배분파이거나 중간계급 내 상승지향적 성향을 강하게 가진 지배분파인 셈이다. 교육을 통해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유지/재생산하려는 86세대의 행위는 이러한 계급 하비투스가 낳는 계급적 실천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일 뿐이다.
한상진은 1989년 당시, “중산층의 개혁 열망을 수용하고 대변하는 책임 있는 정치 세력과 조직이 취약”한 점이 중민의 이론과 실체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여겼겠지만,70 조국 사태와 ‘서초동’, 그리고 202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과 294석 범보수 세력의 독과점은 ‘중민’이 더 이상 이론적 예측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로서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2018) 중민이론의 진정한 목표인 “아래로부터의 변혁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민정부의 등장과 ‘경실련’ 같은 시민운동의 성장이 중민이론의 성공 사례라고 자평했다는 점에서71 그가 말하는 중민이 궁극적으로 어떤 정치적 이념과 사태를 지시하는지를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86세대와 한상진이 꿈꾸었던 중민은 정말 ‘권력 연합’이 아니라 ‘민중 연합’에 참여한 집단인가. 한상진은 2000년대 초반부터 86세대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주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기회인 반면, 자만과 타성에 빠질 수 있는 권력이미지(괴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고,72 이후 2013년에는 86세대가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민중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기득권 세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는 암울한 진단도 내린 바 있다.73 중민의 급진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보여주자는 정태식조차도 인정하고 있는 현실은 “‘민주 정부 10년’ 동안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한 소위 ‘중민’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적 중산층들은 신자유주의, 즉 시장 자유주의를 민주주의로 이해하면서 시장 만능주의적 개혁을 합리적, 민주적 개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런 점에서 ‘중민’의 개혁성, 진보성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하는 점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74 조국을 위시한 86세대 엘리트의 계급정치적 - 모순적 - 실천이 바로 중민이론의 ‘성공’과 동시에 ‘실패’를 정확히 예시한다.
“박정희체제 이래 한국의 다양한 정치적 세력들을 분할하고 결집시켰던 적대의 구조는 이른바 ‘민주/반민주’의 대립이다. 상이한 이해, 상이한 입장을 갖고 있어도, 독재정권에 대해 반대하며 투쟁할 의사가 있다면, 모두가 민주/반민주를 가리는 전선에서 민주의 편에 선 것을 뜻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반민주’의 대립구도는 87년 이후, 혹은 더 뒤로 잡아도 양 김씨의 집권 이후에는 유효성이 소실되었다.”75 이진경은 87년 이후 “정치 전반을 규정하는 새로운 전선의 형태”가 “오랬동안 가시화되지 않았”지만76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고77 보면서 이후 정치적 전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탐구했다. 87년 이후 다양한 투쟁들이 있어왔지만 “그 투쟁들이 응축되어 하나의 전선, 하나의 ‘주요모순’으로 응축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78 이진경은 “새로운 대결의 지점”을 탐구해왔지만, 2019년에도 어김없이 ‘민주/반민주 구도’는 지식인들의 세계에도 다시 돌아왔다. 김민웅이 “계급정치의 분열지점”이라고 주장한, 조국 비판과 불평등의 문제제기가 하나의 조국/반조국의 전선으로 ‘응축’되었던 것이다.
22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19.
23 한상진,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27권, 2015, 18.
24 부르디외, 실천이성, 209-229.
25 조국 국면을 거치며 이 도덕적 자원은 상당부분 균열 내지 유실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만 총선결과를 놓고 볼 때 ‘서초동’과 ‘문파’의 동력은 여전히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한상진은 386세대 운동권의 정계진출을 보면서 “잠복한 문제를 미리 내다보”지 못하고 도덕적 잠재력의 낙관론을 의심하지 않은 것을 실수라고 인정한 바 있다. 한상진, ⎡중민이론의 자기반성⎦,『한상진과 중민이론』, 새물결, 2018, 222.
26 “계급의 정체성과 정치행위의 관계를 이처럼 시간의 궤적이라는 틀 속에서 새롭 게 바라보는 경우 중간계급의 정치적 잠재력에 대해서 그동안 긍정적으로 평가 했던연구들은심각한타격을받지않을수없다. 한상진의중민이론이그대 표적인예인데 그의주장에따르면중간계급이란한국의경제발전에힘입어점 차 하층계급으로부터 새롭게 성장하는 계급이며 갈등하는 정치적 의견에 대하 여광범위한타협과종합이가능한계급범위로간주된다. 그리고한국사회에 는점차중간계급의범주가확대되고있다. 이들은대체로미래에대하여진보 적이고 개혁지향적인 성향을 갖는다고 파악하면서 한상진은 이들이 한국사회 를 이끌어 가는 주체세력이 된다면 오늘날의 지역갈등의 문제도 상당부분 진전 을 이룰 것이라고 예단한 바 있다(한상진 1991a 1991b). 그러나 과연 한국사 회가 거쳐 온 지난 10년이 한상진의 예상처럼 중간계급의 확대에 따라 현실정 치에 새로운 변혁의 움직임이 있었는가 라는 점에서 필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없다. 필자는이러한예견과현실사이에노정된불일치의근본원인이중산 층에 대해서 한상진이 걸었던 성급한 기대감에 있다고 본다. 한국의 중산층이 과연보수적인가? (1987)라는논문으로기존의계급연구에큰도전을했던그 의 논리에는 위에서 필자가 지적한 계급구성의 시간적 궤적과 그로부터 유래하는 계급하비투스에대한고려가충분하지않았던것이다.” 홍성민, ⎡계급 하비투스와 정체성의 정치⎦,『문화와 계급: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동문선, 2002, 310. “중민 이론의 출범을 규정하는 스탠스는 낙관이었다.” 김홍중, ⎡성찰적 노스텔지어: 생존주의적 근대성과 중민의 꿈⎦,『사회와이론』27집, 2015, 67.
27 한상진, 2015, 9.
28 물론 한상진은 오늘날(2015) 청년세대가 생존경쟁 때문에 중민으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했다. 한상진의 중민은 386세대라는 특정 세대의 이중적 모순(중산층 진입 가능성을 높여주는 고학력자본과 사회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민중적 저항이라는 주변부적 가치지향)의 하비투스로부터 추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론적 일반화를 통해서 특정 세대를 지칭한다기보다는 “서구적 발전의 일반 추세” 하에 부합하는 중산층-시민적 주체의 속성으로 재정의되었다. “중민의 특성을 한 시대에 국한하거나 특정 집단에 집중하는 것은 이론의 생명력을 단축”시키기 때문이었다. 한상진,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27권, 2015, 22. 즉 중민이란 386세대라는 ‘현실의 모델’을 ‘모델의 현실’로 바꾸어낸 결과이다. 따라서 사실상 통시적 개념으로서의 중민은 오로지 86세대만이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중민이 86세대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86세대는 중민일 개연성은 충분하다.
29 이진경은 “정권을 장악한 층과 대립하고 투쟁한다는 이유로” 노무현 정권이나 뉴라이트가 “진보적 세력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현재의 전선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교란시키고 무마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론1_87년 이후 한국사회와 사상의 변화⎦, 같은 책, 379. 그렇다면 ‘서초동’은 어떤가? 한국의 지배층인 검찰을 개혁해야한다는 이유로 진보세력은 조국을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조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반민주 적폐’로 규정하는 것은 어떤 착각에 기반한 것일까? 조국을 비호하는 자칭 진보세력의 민주/반민주 전선이야말로 불평등의 문제제기를 교란하고 무마시키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기서 이진경의 이론과 실천이 불일치하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진경의 조국 수호(정치적 실천)는 이진경의 정치이론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는 제 아무리 변혁적 정치이론이라해도 ‘지금 여기’의 정세적 판단과 정치적 선택을 강제할 수 없고, 이론은 정세적 증거에 의해 과소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의 평범한 운명(?)을 확인시켜주는 하나의 사례일지 모른다. 아마도 이진경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혁명에 대한 글이 자신의 시간을 뛰어넘어 고전이 된다는 것 역시 형용모순이 아닐까? 혁명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그 주어진 시간에 전적으로 충실할 때에만 제대로 사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것이 쓰여진 조건, 그것이 사유된 시간을 떠나면 무효화된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때 아닌 시간’ 속에서 읽어주길” 부탁하고 있다. ⎡증보판 서문⎦, 같은 책, 8-10.
30 필자가 보기에 한상진의 중민 이론이 86세대에 관한 이론화이듯이, 이를 부분적으로 계승한 김홍중의 ‘진정성(마음)의 레짐’도 86세대에 관한 이론화이다. 즉 ‘중민’과 ‘진정성’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86세대의 계급 하비투스를 추론할 수 있다.
31 김홍중, ⎡성찰적 노스텔지어: 생존주의적 근대성과 중민의 꿈⎦,『사회와이론』27집, 2015, 43, 70-71.
32 중민 이론은 체제의 모순 구조, 변혁 주체, 실천 노선과 방법을 규정하는 사회변동론이다. 한상진,『중민 이론의 탐색』, 문학과지성사, 1991, 99-103; 김홍중, ⎡성찰적 노스텔지어: 생존주의적 근대성과 중민의 꿈⎦,『사회와이론』27집, 2015, 36-40. 한상진은 ‘중민 현상’을 1985년에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27권, 2015, 8.
33 한상진은 최근에 민중과 중민을 시민 개념으로 재정의했다. 주류 중산층은 중산층이면서 정부 입장을 우선하는 ‘국가시민(state citizen)’으로, 중민은 중산층이면서 시민 입장을 우선하는 ‘공공시민(public citizen)’으로 규정했다. 한상진, 2018, 141. 하지만 86세대가 공공시민인지, 여기서 공공성의 개념은 무엇이며, 86세대 엘리트 지식인들이 이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는 또다른 논쟁을 불러올 것이다. 중민을 ‘급진적 시민’의 구성원리로서 주목한 연구로는 정태석,⎡중민 이론 급진화를 위한 비판적 탐색⎦,『사회와이론』, 37집, 2015를 보라.
34 한상진, 2013, 15.
35 김홍중, ⎡성찰적 노스텔지어: 생존주의적 근대성과 중민의 꿈⎦,『사회와이론』27집, 2015, 55.
36 한상진, 2013, 11.
37 한상진,『중민 이론의 탐색』, 문학과지성사, 1991, ii.
38 ‘합리적 핵심’이란 그것이 당대 역사적・변혁적 주체로 생각되던 특정 집단들(또는 정체성들)의 실천적 속성들로부터 ‘합리적으로 재구성’된 이론적 속성을 의미한다.
39 한상진, 같은 책, 2003, 10-11. 최근에 한상진은 정치권 386이 과거의 군부독재(괴물)를 닮아가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한상진, ⎡한상진 교수의 정치권 386비판: 권력 손에 쥔 386, 과거의 괴물을 닮아가고 있다⎦,⟪중앙일보⟫, 2019.9.26. https://news.joins.com/article/23587241. 이와 유사하게 김홍중은 ‘진정성’의 세대인 386세대가 ‘진정성의 속물’을 거쳐 진정성이 소멸된 ‘속물’이나 ‘괴물’이 될 여지를 성찰했다. “진정성을 추구하는 자는 세속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괴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조차 ‘표현주의적 라이프스타일’로서 상품으로 소비되는 상황을 논했는데, 이는 필자가 보기에 조국 국면에서 86세대 엘리트의 신분의식을 통한 계급재생산의 문제의식과 연결될 수 있다. 김홍중, 같은 책, 41-45. 박치현에 따르면, 진정성이 가리키는 대상은 386세대와 비판적 지식인이다. 이들에게 진정성 개념을 적용해서 분석할 때 적실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김홍중은 80년대, 87체제, 386세대의 ‘마음의 레짐’을 ‘진정성’으로 제시하고 “스펙 쌓기와 자기계발에만 몰두하여 탈정치화되어가는 88만원세대와 대학생들”을 ‘속물’과 ‘동물’로 보는듯 하지만 사실 진짜 속물이 된 건 386세대와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386세대는 “한국의 부동산 폭등과 사교육시장 팽창의 주역”되었다고”고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진정성을 정말 회복해야할 대상은 지식인들”이라고 주장한다. 박치현, ⎡신자유주의 주체성의 사회학: ‘속물’인가 ‘자기계발 주체’인가-『마음의 사회학』(김홍중),『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서동진) 읽기⎦,『문학동네』, 17(1), 2010, 7-8. 이러한 점에서 한상진과 김홍중의 논의 모두 86세대 엘리트 지식인에 대한 성찰적, 비판적 담론이다.
40 한상진, ⎡1장 중도 변혁의 길: 중민노선을 향하여⎦,『한상진과 중민이론』, 새물결, 2018, 137-160.
41 “과거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86세대는 이제 정계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세상이 왔다. 책임이 정말 막중하다. 나는 80년대부터 줄기차게 생각했다. 당시 제자들이었던 그들이 한국을 이끌 시대가 올 것이라고. 그들을 핵심에 놓고 ‘중민’이란 개념도 만들었으니. 그런데 그들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적잖다. 나 역시 정치권에 진입한 86세대에 대해 일종의 ‘권력의 도구’로 변신한 게 문제라고 혹독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학생 시절엔 민중의 부채의식 속에서 권력을 경계했다. 그들은 이제 주류지만 여전히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특히 정계의 86세대에 대해 시민사회의 86세대가 그 기능을 해야 한다.” 일요신문, 2018. 6. 22.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01370
42 한상진은 중민의 판별 기준이 엄격하다면서, 80년대 세대 구성원 모두가 자동적으로 중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의 대학 체험이 독특하고 강력했으며 학생운동 참여 여부를 떠나 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심리적, 정서적, 도덕적 수호가 학생 대중을 단결시켰다는 점에서 80년대 세대를 중민의 대표적 보기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을 다니지 않은 집단이라도 같은 연령대로서 80년대 사회변동을 공유하고 이 체험이 가치관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가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민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상진,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27권, 2015, 19-20.
43 한상진,『중민 이론의 탐색』, 문학과지성사, 1991, iii.
44 90년 중반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확대된 중산층의 개혁노선과 계급 수렴 모델에 기초한 중민 이론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중산층 신화가 몰락하고 민주주의를 배반하는 양상마저 나타남으로써 중민의 자리가 희박해진 것이다. 김홍중은 중민 이론의 위기를 해결하고자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한” 중민을 포기하고 사회철학적 해석을 통해 보다 개혁적인 “새로운 존재”들로 구출하려 애쓰지만, 필자가 보기에 86세대는 여전히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한 중민이다. 또 김홍중이 중민을 ‘민중도 아니고 중산층도 아닌 양자를 모두 부정해서 나온 새로운 존재’로, “타협적, 중간적, 수렴적 존재가 아니라” “탈인습적 가치와 진정성을 추구하면서 기성 권위에 저항하는 ‘갈등적’ 존재”로, “급진적 혁명과 체제에 대한 복종이라는 두 대립 항 사이에서 점진적 개혁이라는 전이 지대를 교섭해내는” “계급/계층적 함의를 벗어나는” 보다 긍정적 존재로 그려내는 반면, 필자는 중민이 여전히 계급적 한계 내에 노정되어 있다고 본다. 김홍중, ⎡성찰적 노스텔지어: 생존주의적 근대성과 중민의 꿈⎦,『사회와이론』27집, 2015, 44-48. 김종엽은 중민의 ‘자기혐오’가 민중되기를 욕망하지만 될 수 없는 모순의 효과임을 지적했는데, 이는 중민의 정치의식을 제약하는 계급/계층적 조건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종엽, ⎡한상진의 중민이론과 도덕발달⎦,『한상진과 중민이론』, 새물결, 2018, 302-303.
45 한상진,『중민 이론의 탐색』, 문학과지성사, 1991, iii.
46 정철희, 『한국 시민사회의 궤적: 1970년대 이후 시민사회의 동학』, 아르케, 2003.
47 한상진, ⎡책머리에⎦, 한상진 편, 진정・김민희・조두현 외 31명,『386세대, 그 빛과 그늘: 암울했던 80년대 대학생들의 순수와 열정과 방황의 기록』, 문학사상사, 2003, 14.
48 한상진, 1991.
49 김종엽, ⎡한상진의 중민이론과 도덕발달⎦, 『한상진의 중민이론』, 새물결, 2018.
50 김종엽, ⎡한상진의 중민이론과 도덕발달⎦,『한상진과 중민이론』, 새물결, 2018, 302.
51 정태석, 2015, 77.
52 한상진,『중민 이론의 탐색』, 문학과지성사, 1991, iii.
53 김형준은 중간계급으로서 86세대가 ‘교육성공신화’를 공고히 함으로써 교육경쟁의 계층화와 교육불평등을 강화하지만 성공적인 계층재생산에는 실패하는 요인을 탐구했다. 이에 따르면 86세대와 이후 청년세대 모두 교육성공신화에 ‘기만당한 세대’라고 주장한다. 김형준, ⎡과잉교육경쟁의 역설: 386세대 중산층의 사례를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 2016; ⎡’교육성공신화'의 역설: 기만당한 세대들의 기원에 대하여⎦,『경제와사회』, 125호, 2020.
54 박치현, ⎡1980년대의 자기기술: 민중, 중산층, 중민, 시민⎦, 『역사문제연구』, 41호, 2019, 58-59.
55 박치현(2019, 64)은 중민 개념이 민중 개념에서 시민 개념이 등장하기 위한 ‘사라지는 매개자(vanishing mediator)’라고 주장했지만, 필자는 ‘중민’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실제로는 86세대에 의해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86세대는 민중과 시민 사이의 ‘사라지지 않는 매개자’였던 셈이다.
56 “진정성이 깃드는 모멘트는 운동의 현장보다는 오히려 운동이라는 자기 결정에 이르는 수많은 번민과 방황과 망설임의 순간들이라 할 수 있다.” 김홍중, 같은 책, 54.
57 에릭 올린 라이트는 ‘중간계급’의 특징을 ‘모순된 계급위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는데, 86세대 엘리트 지식인도 이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신중간계급’으로서 유사한 관점에서 지배와 피지배 사이에 있는 계급위치로 이해될 수 있다.
58 한상진,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27권, 2015, 8-9; 한상진,『한상진과 중민이론』2018, 139 참조.
59 정태석, 같은 논문, 2015, 81.
60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중민 개념은 86세대를 그대로 묘사하고 싶은 ‘표현적 의도’를 민중의 운동담론과 계급론이라는 학술담론 형식 속에서 ‘완곡화’한 것이다.
61 박치현, 같은 논문, 2019, 78.
62 한상진,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27권, 2015, 9.
63 한상진,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27권, 2015, 8.
64 한상진,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27권, 2015, 8.
65 한상진, 2018, 160.
66 국민일보, 2015.12.7. http://m.kmib.co.kr/view.asp?arcid=0010139746
67 한상진, 2018, 185.
68 ‘변혁적 민중론’과 ‘(신)중산층적 민중론’의 구별에 대해서는 이세영, ⎡한국 근현대 민중론⎦, 한국역사연구회 안병욱 편,『한국 민주화운동의 성격과 논리』, 선인, 2010, 177-240을 보라. 중민 이론이 ‘개량주의’라는 비판은 윤건차,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지식인과 그 사상 1980-90년대』, 장화경 역, 당대, 2000.
70 한상진, 2018[1989], 139.
71 한상진, 2018, 168.
72 한상진, 같은 책, 2003, 11.
73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적대적 공생 관계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비난이 강하게 제기된 상태다. 더 이상 개혁적이지도 않고 도덕성을 상실했으며 민중에 대한 부채 의식도 없이 어느덧 기성 체제의 일부가 되어 특권을 향유할 뿐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과연 그런가? 80년대의 경험을 되살려 보면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변동의 주체로서 486 정치인의 역할이 소진되었거나 소멸했다는 진단은 참으로 믿기지 않는 것이다.” 한상진, ⎡중민 이론의 자기반성⎦,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2013 학술세미나 자료집⟫, 2013, 11; 김홍중, ⎡성찰적 노스텔지어: 생존주의적 근대성과 중민의 꿈⎦,『사회와이론』27집, 2015, 68 재인용.
74 정태석, 109.
75 이진경, 같은 책, 2008, 366.
76 이진경, 같은 책, 2008, 366.
77 이진경, 같은 책, 2008, 368.
78 이진경, 같은 책, 2008, 366.
79 이남희, 『민중 만들기: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재현의 정치학』, 유리・이경희 역, 후마니타스, 2015.
80 천정환, ⎡‘1987년형 민주주의’의 종언과 촛불항쟁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 대중민주주의의 문화정치를 중심으로⎦『문화/과학』94호, 2018년 여름(재수록,『문화/과학 이론선집: 문화이론의 도래와 파장』2019, 192).
81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본래 ‘중민’은 당시 ‘현실 계급(real class)’이라기보다는 예측적으로 구성된 ‘이론적 계급(theoretical class)’, ‘개연적 계급(probable class)’이다. 부르디외의 관점으로 보자면, 한상진의 중민 이론은 사회적 공간 안에서 인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인구집단, 사실상 하나의 계급으로서 동원되기 어려운 민중과 민중적 가치지향을 갖는 중산층(사실상 학력자본을 갖춘 86세대 운동권)이라는 두 집단을 이론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계급으로서 통합하고자한 야심찬 시도다. 하지만 부르디외는 연구자의 지적 결단이 논문 상에서 허구적으로 재조합된 이론적 계급을 현실 계급으로 조장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상진이 구성한 ‘중민’은 오늘날 86세대라는 ‘현실 계급’을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예언한 셈이 되었다. 즉 중민의 존재에 관한 주장이 중민(586세대)이라는 존재가 된 것이며, ‘이론적 계급’이 ‘현실 계급’이 된 것이다. Pierre Bourdieu, Practical Reason: On the Theory of Action, Polity Press, 1998, 10-11 참조.
82 실제로 노무현, 문재인 수호자들은 2002년과 2017년 대선, 그리고 2020년 총선의 민주당 승리를 87년 6월 항쟁으로 시작된 민주화운동 연장선상에서 그 완성으로 이해한다. 한편 한상진은 ‘노사모’가 “중민이론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으며 “중민 이론의 타당성과 중민의 지속가능성 명제를 어느 정도 입증했다”고 주장하면서도 80년대 세대 운동권 출신의 정치적 실패로 인해 중민 이론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한상진,『한상진과 중민이론』, 새물결, 2018, 221; 한상진, ⎡양극화 시대의 중민: 30년의 회고와 전망⎦,『사회와이론』, 2015, 7, 15-16.
83 이철승은 86세대가 내적으로 응집된 ‘세대의 네트워크 권력자원’을 통해서 시민사회로부터 국가를 점유해가는 과정을 분석했다. 이철승, 같은 책, 2019. 정용인 기자는 ‘장기 386’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정용인, ⎡[포커스]기업도 ‘장기 386시대’의 덫에 걸렸다?⎦, ⟪경향신문⟫, 2019.3.2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3231146001
84 이진경, ⟪한겨레⟫ 대담, 2020.1.15.
85 이진경은 조국 자녀의 자소서를 공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음 부러운 딸이네요. 이런 친구를 왜들 그리 헐뜯고 난리인 건지..” 이진경 페이스북, 2019.8.26.
86 이진경 페이스북, 2019. 10. 1.
87 ⟪한겨레21⟫ 1282호, 2019.10.6.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7675.html
88 김종엽, ⎡조국 사태, 대학입시, 그리고 교육 불평등⎦,『학력주의 사회사: 청년, 공공성, 계급재생산』자료집, 주최: (사)한국사회사회학회,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SSK 청년연구팀 공동학술대회, 2019, 160.
89 강수돌, 한겨레칼럼, 2019.9.6.
90 강수돌, 한겨레칼럼, 2019.9.6.
91 여기에서 우리는 일반행위자들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지식과 도덕감정에 대한 (비단 86세대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의 오랜 터부를 재확인할 수 있다.
92 이남희, 같은 책, 2015, 249.
93 강준만은『강남좌파2』(2019)에서 민주화 운동경력이 있는 86세대 강남좌파가 그 헌신으로 인한 도덕적 우월감(도덕적 면허 효과) 때문에 지나친 독선과 오만을 낳았고, 자기 객관화를 못하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94 한상진, 같은 책, 2003, 12.
95 Perry 1992, 152; 이남희, 같은 책, 2015, 249, 재인용
96 강준만,『강남좌파2』, 인물과사상사, 2019, 62.
97 Charles Tilly, Durable Inequality, Univ. of California Press, 1998.
98 김홍중, ⎡성찰적 노스텔지어: 생존주의적 근대성과 중민의 꿈⎦,『사회와이론』27집, 2015, 66.
99 중간계급 하비투스의 실천적 딜레마에 대해서는 김성윤, ⎡⎦『』을 보라.
100 원동욱, 페이스북, 2020.1.13.
101 이남희, 같은 책, 2015.
102 86세대 운동권의 장과 하비투스의 산물인 사회적 책임서사에 따르는 도덕적 우월감은 ‘도덕적 면허 효과’라는 심리적 기제로 표현될 수 있다.
103 한국기독학생총연맹, 『한국민중사』제 2권, 풀빛, 1984, 21-27; 이남희, 같은 책, 2015, 390, 재인용.
104 강준만, 『강남좌파』, 인물과사상사, 2011, 182, 재인용.
105 이남희, 같은 책, 2015, 393.
106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적 존재가 갖는 자율성은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무식한 척하며 쿨하게 행동하는 것(과소교정)과 같은 겸양전략의 사용가능성에 의해 가장 잘 드러난다. 명망가들은 친히 내려옴으로써 일부러 경계선을 위한하고, 그럼으로써 특권을 지난 채 자유롭게 행동하는 특권 중의 특권을 누린다. 부르디외,『언어와 상징권력』, 김현경 역, 나남, 2014, 164-165. 계급적 조건을 내려놓지 않고도 얼마든지 민중혁명과 계급투쟁을 말할 수 있으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107 이철승, 같은 책, 53.
108 박치현, “1980년대의 자기기술”, 『역사문제연구』, 41호, 2019, 56, 59.
109 이남희, 같은책, 2015; 박치현, 같은 논문, 2019, 65.
110 부르디외, 『언어와 상징권력』, 김현경 역, 나남, 2014, 246.
111 부르디외, 같은 책, 2014, 250.
112 구형진 외, ⎡4. 현재의 386, 미래의 386: 역사적・사회적 의미와 책임⎦, 한상진 편, 같은책, 2003, 292.
113 부르디외, 같은 책, 2014, 253.
114 부르디외, 같은 책, 2014, 256.
115 부르디외, 같은 책, 2014, 257.
116 부르디외, 같은 책, 2014, 257.
117 이남희, 같은책.
118 한상진 편, 같은 책, 2003, 16.
119 부르디외, 같은 책, 2014, 253-54.
120 부르디외, 같은 책, 2014, 254.
121 그래서 부르디외는 이를 ‘동원된 계급(the mobilized class)’이라고 불렀다. Bourdieu, 같은 책, 11 참조.
122 김정한, ⎡민주화세대의 역사적 좌표⎦,『황해문화』, 2006, 100.
123 한상진, ⎡세계적 변혁기의 민주주의 재조명⎦,『철학사상』1991, 94-101.
124 이진경도 이같이 말한 바 있다. 페이스북, 2019. 9. 29, 댓글 중.
125 신진욱은 386세대를 빌미로 민주화, 평등, 진보의 가치를 조롱하고 공격하는 것을 ‘386 담론의 일베화’로 규정하고 ‘386 말하지 않기’를 주장했다. 이러한 세대주의 담론은 우익 언론이 만든 프레임이며 실제 386이 사회의 모든 기득권을 차지하는 세대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와 김정훈・심나리・김항기의 <386 세대유감>도 비판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921541.html 민주정치와 사회변혁의 전망에 대한 현재 586세대의 과잉 표상을 비판하고 그들의 정치적 실천을 민주화의 완성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86세대를 과도한 정치적 의무에서 해방시키는 동시에 진보적 가치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126 대표적으로 『문화/과학』은 87년 체제가 불완전한 민주주의체제였다는 전제하에 ‘민주화세력’이 주도하는 ‘새로운 체제’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94호를 발간하며⎦를 참조하라.
127 천정환, ⎡‘1987년형 민주주의’의 종언과 촛불항쟁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 대중민주주의의 문화정치를 중심으로⎦,『문화/과학』94호, 2018년 여름(재수록,『문화/과학 이론선집: 문화이론의 도래와 파장』, 문화과학사, 2019, 188).
128 ‘86세대가 진보적이라는 착시를 거둔다면, 86세대’가 계층상승을 추구하는 ‘계급’의 이름이라는 나의 주장은 조금 더 현실적인 주장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김정한은 사회운동의 정치적 주체에 ‘세대’ 명칭을 붙이는 것은 다소 예외적이라면서 “운동세대 담론은 운동세력이 지배엘리트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재)생산되고 그것을 정당화한다. 요컨대 사회운동이 운동권 출신 지배엘리트의 명분이 될 때 그 지배엘리트를 지칭하는 용어가 ‘무슨 무슨 운동세대’”라는 것이다. 문제는 “운동세대 담론은 사회운동과 정치적 주체의 결합이 아니라 분리를 표현한다. 그것은 특정한 사회운동의 정치적 주체를 명확히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운동과 멀어지고 무관해진 어떤 정치적 존재의 회고적 신화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86세대는 “노무현 정권에서 전면적으로 지배 엘리트로 변모했다.” 또한 86세대의 진보성과 이념성이 과대포장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한, ⎡민주화세대의 역사적 좌표⎦,『황해문화』, 2006, 97-99,104. 또 고원에 따르면, “정치세대로서 386세대는 원래부터 다른 세대에 비해서도 특별히 진보적이거나 이념적이지 않았으며, 개혁지향적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현실과 타협도 잘하는 현실합리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들은 일상의 수준에서 민주화를 달성한 세대라는 자부심을 숙연한 방법으로 잘 표출하고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데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안다. 그러면서도 대의명분을 현실로부터 분리시켜 관리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원, ⎡386세대의 정치의식 변화 연구⎦,『동향과전망』, 2005, 205-206.
129 서영표는 86세대 교수 집단을 겨냥해 ‘민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데 압장’섰으며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대변자라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86세대 지식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라고 치켜세워진 경쟁과 능력에 따른 보상의 원리를 교육 체제 안으로 촘촘히 침투시킴으로써 학생들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서영표, ⎡비판정신의 실종과 민주화운동 세대의 이율배반⎦,『대학: 담론과 쟁점』(2), 2016, 17.
130 부르디외, 『구별짓기(하)』, 최종철 역, 새물결, 2005, 781.
131 김영현, 『폭설』, 창작과비평사, 2002,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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